살아가는 이야기

사생활 침해 논란..부모님 일대기 쓰기..

두리아빠119 2006. 6. 10. 15:53

요 며칠전..

일 끝내고 집에 오니 중학생 아들이 과제물로 부모님의 일대기를 발표 해야 한다면서,

인터뷰를 해 달랍니다..

순간, 당황..

"아빠가 살아온 일대기를 조사 해서, 다른 학생들과 선생님 앞에서 발표를 한다고.."

그렇다면, 아빠의 사생활이 모두 까발려 지는 거겠네?

학벌,경력...살아 온 과정..

어느 것 하나, 엘리트 과정을 밟지 않았기에...

내세울 것도 없고, 쓸 것도 없는데...도대체..이게 뭔말인지...

딱 잘라 이야기 했습니다..

나:"그냥 엄마 보고 써달라고 해라..아빠는 사생활 침해 받기 싫단다.."

아들:" 엄마도 싫다고, 아빠 보고 써 달래는데요.."

나: 아빠는 싫다니까..차라리 뉴질랜드에 살고 있는 큰 아빠의 전기문을 쓰는 것이 어떻겠니?"

아들: "싫어요..아빠의 일대기를 쓸래요..빨리 좀 적어 주세요..."

나:.."몰라..배고파...."

그리고는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머릿속에는 별별 생각이 다 스치고 지나가더군요..

 

국민 학교..중학교..등등..

도대체 어느 부분을 어떻게 써달라는 거지?

그리고, 그런 것을 많은 사람들 앞에 발표를 한다고...

학교에서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숙제를 내주는 건가?

내가 만약 사기꾼에 파렴치한이라면?

내가 만약 국민학교도 안나온 무학력자라면?

내가 만약 부모님도 모르는 사람이라면?

내가 아주 늦게 결혼 해서 지금 나이가 60 정도 되었다면?

그래서 과거를 감추고 살고 싶은 사람이 었다면....

전기문을 쓸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살아온 약력을 바탕으로 아들은 전기문을 쓰고..

그 과거를 반 친구와 선생님들 앞에 발표를 할 수 있을까?

또 발표를 하고 나면, 다른 사람들의 시각은 어디로 향하게 될 것인가?

 

내가 만약 대통령 이라면..

내가 만약 아주 유명한 연예인 이라면..

내가 만약 아주 돈 많은 재벌 기업 총수라면...

내가 만약 서울대 학교 같은 커다란 대학교의 총장이라면..

내가 만약 국가 유공자라면..

그래서 과거를 떳떳이 자랑하고 알리고 싶은 사람이 었다면..

내가 준비 하지 않아도..

누군가가 나의 일대기를 쓰고 발표 할 꺼라 생각 합니다..

 

새학년만 되면 잇슈화 되는 가정환경 조사서에 대한 논란과 요즘의 이력서에 대한 논쟁에도 사생활 침해에 대한 부분이 항상 문제가 되는데..

내가 태어나고 자라고, 살아온 그런 이야기 들을 써야 하는 일대기 라면..

나의 사생활에 대한 노출은 얼마나 될 것인지..

나의 어린 시절과 지금의 아이들이 많이 바뀌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어린 시절에 새학년이라는 것은

새로운 친구와 선생님과의 만남에 대한 기쁨 보다는..

우리집 가정환경이 낱낱이 밝혀지는 것에 대한 공포가 더 컸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즉, 사생활 침해에 대한 공포이며..

일년간을 떠 안고 가야 할 커다란 짐이 되는 것이지요..

누구네 아빠는 선생님이고, 누구네 아빠는 미장공이고, 누구네 아빠는 가게 주인이고,

누구네 아빠는 회사원이고....

 

그때를 잠시 회상 해 보면..

그 당시에는 가정 환경을 조사 하는 방법에 있어서..

가정 환경 조사와 함께 병행 되던것이..

거수에 의한 방법 이었읍니다..

새학기 시작과 함께..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질문을 시작 합니다..


1. 텔레비젼 있는 사람 손들어...
2. 신문 보는 집 손들어...

3. 자기네 집인지?  전세 인지? 월세 인지?  구분하여 손들어를 시킵니다..

4. 종교..손들어..

5. 아빠의 직업..손들어..

손들어로 시작 해서 손들어로 끝납니다..

그렇게 오픈된 소스에 의한 조사가 끝나고 나면...

자신들의 상황에 따라서, 그 아이들은 일년내내 상처 받는 친구들도 있었다는 것이지요...

저 역시, 텔레비젼이 없는 국민 학교 시절을 보냈기에..

매 학년 마다, 가정 환경 조사서와, 거수에 의한 조사 방법에 항상 주눅 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즉, 텔레비젼이 있는 친구들의 당당한 거수에 비하여, 항상 초라해 질 수 밖에 없는 그런 아픔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싯점에서 아이들을 모아 놓고, 아파트 평형에 따라서 손들어를 시키면 어떨까요?

지금 싯점에서 아이들을 모아 놓고, 휴대폰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나누는 것은...

지금 싯점에서 아이들을 모아 놓고, 아빠의 직업을 물어 본다면 어떤 일이 생길 까요?

아이들에 따라서 제 각각 느끼는 생각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평균선이라는 기준선을 그어 놓고..

평균선에 못미치는 아파트와 휴대폰과 아빠의 직업을 가진 아이들이라면...

그 상실감은 이만 저만이 아니리라 생각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빠의 전기문을 미사려구로 포장하여, 소설 처럼..드라마 처럼..

써야 하는 건가요?

전기문을 쓰기 위해, 아들과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눈다고 해서..

가정이 행복해 지는 것인가요?

아들이 부모님의 일대기를 조사 하고 쓰는 것은 가족간에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는 소통의 장이 될 수 있을 지는 몰라도..

그 사실에 바탕한 부모님의 일대기를 평생을 같이 하여야 할지도 모르는 친구들과 선생님 앞에서 발표를 하고, 그 것을 점수 매긴다는 것은 심각한 사생활 침해 아닐까요?

 

어쨌든, 아들과의 어색한 대화가 끝난후..

밥을 먹고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인터넷을 검색 해보니..몇몇 중학교 학생들이 올려 놓은 자료도 찾을 수 있었고..

질문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 만큼 많은 학교에서 지금도 시행이 되고 있다는 이야기 겠지요....

한참을 고민 하다가..

나의 약력이라는 문서를 꺼내서 프린트 하여 아들에게 주었습니다..

문서 속에는 태어난 해 부터..지금 까지의 저의 정보가 일목요연하게 정리 된 것이거든요..

그 문서를 보고, 스스로 아빠의 전기문을 쓰도록 한 것입니다..

근데, 그 문서가 저에게는 일목요연 하게 들어 오는 것이 었지만,

중학생 아들에게는 어려운 문서 였나 봅니다..

계속 이어지는 아들의 질문에..

"아들아..기다려 아빠가 간략히 작성 해 줄께.."

결국에는 태어나서 부터 지금 까지의 나의 일대기를 쓰고..

지난 사진을 몇장 찾아서 아이에게 주었습니다..

그 와중에..지난 앨범들을 돌아 보면서 추억에 빠졌던 그 기억외에는..

일대기를 써서 남에게 발표 하는게 왜 필요 한지 알수가 없더군요..

하여간에, 아들은 내가 써준 전기문과 사진을 가지고,

뺄 것은 빼고, 넣을 것은 넣더니..

학교에서 발표를 했다고 합니다...

하기 싫은 넘은 안하면 안되나...

성적에 반영 된다니 안할 수도 없고....

 

 

"내가 스스로 발표 하기전에는 나의 일대기를 알려고 하지 말라.."

"내 살아 온 이야기..나만 간직 하고 싶은 것도 있는 겁니다.."

 

 

중학교 1학년 때 일기장입니다..

이 일기장도 보여주고, 읽어 주랴?

사생활 침해..  짜증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