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속으로

눈다래끼는 地平으로 치료 한다..

두리아빠119 2006. 5. 22. 20:47

4-5년전 뉴질랜드에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살면서 공부 하던 큰 아이...

그때가 초등4년 때 인가 봅니다.

한국에 있을 때도 눈다래끼를 달고 살더니만..

그 곳에서도 역시..눈다래끼가 자주 생기더군요..

그러나, 뉴질랜드에서는 병원 한 번 가려면, 한국 처럼 간단 하지가 않습니다.

한국에서야 다래끼 나면 그 즉시 안과로 달려가면 바로 치료가 되지요.

동네 골목 마다 안과 없는데가 없으니, 시간과 비용면에서 정말 간단 하지만..

뉴질랜드의 경우, 패밀리 닥터에게 예약을 하고 찾아가서..

진단 받고..수술 해야 할 경우..수술 할 수 있는 곳을 또 다시 찾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요..

무엇 보다도..빨리 빨리에 익숙해 있는 우리네 정서에는 정말 맞지 않는 그런 번거로움입니다.

그래서, 웬만한 감기나..다래끼 정도는 그냥 우리식의 민간 요법으로 대처 하고 말았습니다.

그 당시, 할머니가 쓰시던 방법 중에 하나가..

손자의 발바닥에  地平 이라는 두 글자를 쓰는 요법 이었습니다.

왼쪽눈에 다래끼가 나면, 오른 쪽 발바닥에 쓰는 식으로 반대편 발바닥에 지평이라는 두 글자를

써 넣어 줍니다..그러면,

신기 하게도..다래끼는 더 이상의 발전 없이..자연 소멸 되어 버리거나..조금 곪아서 터져 버리고 말더군요..

이때 주의 할 점은 지평이라는 글을 쓸 때는 끝이 뾰족한 볼펜같은 필기구를 이용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여기서 제가 유추해 보니..

볼펜의 뾰족한 심이 발바닥의 혈을 눌러 주어서..

마치 수지침과 같은 작용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 지평이라는 두 글자의 효과를 본 우리 아들은 중학생인 지금도 다래끼가 발병하면..

저 한테 달려 옵니다.."아빠..글씨 써 주세요..할머니가 썼던 그,,것.. 地平"

볼펜을 들고 발바닥에 글씨를 쓰면, 간지러워서 자지러 지면서도...그 것이 또 그렇게 재미 있나 봅니다..

다래끼가 생겼을 때..지평을 쓰던 것은 저 어렸을 때도 어머님이 많이 쓰시던 치료 법이 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사실 변변한 의료 서비스를 받기가 어려운 시절이 었기에..

그런 식으로 통용 되는 민간 요법이 정말 많았던 것 같습니다.

제가 국민 학교 때인가..지나 가던 형들이 던진 돌에 왼쪽 어깨를 맞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병원에 가서 치료를 하고도..못미더워서..

어머님은 어디선가 치자꽃가루를 구해 오시더니, 밀가루에 섞어서 노랗게 반죽을 하셨습니다.

그 반죽을 손바닥 만하게 펴서는 다친 어깨에 붙여 놓았었지요..

그 때, 어떤 효과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노란색 밀가루 반죽을 어깨에 붙였던 기억만큼은 생생 합니다..

 

또 이런 기억도 있습니다..

 

여름 방학에 할아버지 산소에 가던 시골길..

할아버지 산소는 기차에서 내려서도 한시간 여를 걸어 가야 하는 곳에 있었습니다.

그 때는 아득히 먼 거리로 느껴 졌었는데..

지금은 기차역에서 10분이면 가는 곳이더군요..

하여간..그렇게 기차에서 내려서 무료하게 걸어 가다 보니..

길가에 잔뜩 열린 산딸기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세 남매는 산딸기를 따먹기 시작 합니다.

작은 누나의 비명 소리에 쳐다 보니..땡삐(땅벌) 수십마리가 작은 누나를 완전히 에워싸고 공격을 하고 있었지요...어떻게 도망 쳤는지는 전혀 기억에 없지만..

작은 누나는 거의 얼굴을 알아 보지 못할 정도였지요...

뭐..땡삐에 공격 당하면 커다란 소들도 꺼뻑 넘어 간다고 하던데..

그 당시 국민 학생이었던..그 어린 누나야 오죽 했겠습니까..

그때..할아버지 산소가 있는 그 시골에서...치료법이 무엇이었겠습니까..

바로 우리의 토종 된장 이었습니다..

전깃불도 들어 오지 않던, 그 외진 시골...

지금 같이 119라는 응급 시스템도 없었을 테고..

핸펀은 커녕 전화 마저도 없었을테니...

토종 된장의 치료 효과는 대단 했을 꺼라 짐작 합니다...

 

그러나, 그런 식의 민간 요법은 검증 되지 않은 것이 허다 하기에...

때로는 심각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역시나, 작은 누나의 국민 학교 시절...

그때는 동네 골목 마다..아이들이 넘쳐 나던 시절이었습니다.

학원이 뭔지, 과외가 뭔지...

학교 갔다 오면, 놀기 바쁜 그런 때 였지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동네 골목을 쏘다니던 그 시절...

동네의 짓굿은 어떤 형이 던진 돌이 작은 누나의 이마에 정통으로 맞았습니다..

제가 기억 나는 것은 피를 철철 흘리며 길에 누운 누나의 모습입니다..

그때, 지나가던 어떤 아주머니가, 막 달려 오시더니..

"어이쿠..큰일 났네.." 하시더니 갑자기 종이를 찾는 것이 었습니다..

누군가가 신문지를 구해다 주니, 신문지를 불태워서 그 재를 돌에 맞아 상처가 벌어진 그 곳에 마구 쑤셔 넣는 것이 었지요...(차후에 들은 이야기 이지만, 지혈과 소독의 효과가 있다는 이야기가 있지요..) 그리고는 어머니와 함께 병원으로 달려 갔던 작은 누나....

상처속에 박혀 있는 잿가루 빼내느라 엄청 고생 했지요..

병원 의사 선생님에게 욕은 욕대로 먹고..돌에 맞거나, 꿰매는 아픔 보다도..

잿가루 제거 하는 것이 더 아펐다고 합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 지던, 그런 민간 치료법들이 그리운 것은 그 효능이나 효과 때문이 아닙니다. 어린 시절..오랜된 추억 꺼리를 되 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눈에 티가 들어 갔을 때는 어머님의 혀로 눈알을 핥아 주시기도 하시고...

먹은 것이 체해서 방바닥을 데굴 거릴 때는...

손가락을 실로 감고, 커다란 바늘로 혈을 뚫어 체한 것을 시원하게 해주기도 하고..

머리에 펄펄 열이 날 때는 밤새 얼음 주머니를 머리에 얹어 주시고, 밤새 부채질 해주던

바로 그 손길이 그립기 때문입니다.

나의 똥배를 어머니의 약손으로 고쳐 주던 그시절..

이명래 고약과 김계랍이라는 빨간 알약..

부채표 활명수...뇌신,명랑...안티프라민,호랑이 연고..아까징끼(빨간약),옥도정기,

훼스탈..

내 맘대로 진단 하고..내 맘대로 처방 하던.. 그 시절

그 때를 추억 합니다..

 

국가 대표 드라이버 이신 아버님이십니다..

연도 미상..차종 미상..지역 미상...

 

 

주의 사항..

위에 나온 민간 요법들은 전혀 검증되지 않은 사항들입니다.

절대로 저는 책임 안집니다..

따라 하지 마세요...

그냥 지난 이야기 일뿐입니다....